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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일본을 제쳤다는데...

기사승인 24-06-07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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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산유국이 된다는데 기쁘지 않은 이유


 
이영철 시인/대학교수
 
“포항 영일만에서 석유와 가스매장량 확인,” “1인당 국민총소득에서 사상 첫 번째로 일본에 승리.” 연일 터져 나온 뉴스가 기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사상 처음 일본을 앞섰다는데, 우리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데, 왜 기쁘지 않은 걸까? 

일본과 함께하는 일이라면, 지난날의 식민역사를 떠올리며 뭘 하든, 하다 못 해 화장실 가는 것조차 먼저 가야 일본이 우리에게 남긴 그 아픈 식민역사를 통쾌하게 비웃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인데, 그 사상 최초의 성취에 별 반응이 없는 이유가 뭘까?

지난 5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이 지난해에 3만 3745달러에서 3만 6194달러로 상승함으로써 3만 5793달러인 일본을 앞섰다. 이번에 일본을 앞선 1인당 국민총소득 상승의 주된 요인은 일본의 엔저 현상, 우리 반도체수출의 호전된 여건, 그리고 5년마다 이루어지는 국민총소득 통계 기준연도의 재조정 때문이다. 국민 개개인의 체감도와 거리가 먼, 그리고 언제 바뀔지 모르는 국가적 통계수치의 상승이고 승리이다. 언제 어디서나 손바닥 안에 펼쳐 놓고 읽을 수 있는 경제정보를 우리 국민이 모를 리 없다. 따라서 국민들은 호주머니로 직접 체감되지 않을지라도 이런 통계수치에 대해 냉철한 입장을 취한다. 지난날의 통계들이 일부 조작되었다는 감사원보고서에 대해서도 연일 뉴스로 접하며 쉽게 흥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유국의 지위는 얼마나 오랫동안 기대하고 꿈꿔왔던 일인가. 지금까지 자원 빈곤국이란 지위에도 불구하고 성취해온 정치적·외교적·경제적 지위에 원유생산국의 지위를 추가한다고 생각해보라. 중동에서 분쟁과 전쟁과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마다 유가변동의 시계추와 파급력에 얼마나 많이 밤잠을 설쳐야 했는가? 산유국들의 막강한 영향력에 의해 시작된 1970년대 유가파동은 산유국들의 초국가적인 정치적·경제적 힘을 과시하며 상대적으로 자원 빈곤국들을 벌벌 떨게 만든 역사적 사건이다. 우리 경제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역사적 사건들 중 하나로 기록할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따라서 산유국이 된다는 것은 그동안 겪어야 했던 역사적 기억과 현실적 고민을 한꺼번에 벗어던질 수 있는 사건이다. 이런 역사적·현실적 해방감이 왜 기쁘지 않은 걸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유국의 꿈 보따리를 풀었을 때를 기억해본다. 어느 가수의 ‘제7광구 검은 진주’란 감탄사로 시작하는 희망적 리듬과 메시지가 울려 퍼질 때,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자원 빈곤국의 나약한 경제적 지위 속에서 더 잘살기 위한 꿈을 키워가며 그 검은 진주로 샤워라도 하고 싶어 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그 검은 진주로 온몸 마사지라도 하고 싶어 했다. 우린 경제의 가장 취약점인 ‘100% 원유 수입국’이란 자원 빈곤 국가의 지위를 벗어던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고진감래의 실현, 또는 진인사대천명의 관철이란 인간적 운명적 성취감까지 느끼게 했다.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된 지금, 첨단정보기기 산업의 중심이 되어버린 지금, 정보 플랫폼이 작동하는 지금, 널찍한 고속도로가 주말과 평일을 막론하고 주차장처럼 변할 때가 많은 지금, 자동차 강국의 고가 중형차와 해외 수입 자동차들이 도시는 물론 지방 곳곳을 누비는 지금, 주말이나 연휴에 캠핑장이 붐비고, 공항이 붐비는 지금, 주요 선진국의 소비자 물가를 능가하는 지금, 노동의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잃어버린 지금, 근면의 요구를 갑질로 비난하고, 검소의 요구는 소비문화의 역행으로 취급하는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심장에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미래의 운명은 큰 감동거리가 아니다. 

인기 없는 대통령의 발표이고, 인기 없는 대통령 시대의 쾌거로 각인될 것 같기 때문인가? 아니면 지난날의 정치쇼를 기억하며 부화뇌동할 수 없다는 신중론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인기 없는 대통령과 정부가 국면전환을 노리고 엄청난 붕괴의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고 자체분석을 내부적으로 공유하며, 그 허구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시점까지 관망하고 있다가 뒤집어엎겠다는 비관론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고 아니면, 시한부의 지위와 같은 그까짓 산유국 지위가 없어도 이만큼 잘 살고 있기 때문일까? 환경오염의 주범 화석 에너지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신재생 에너지와 바이오 에너지 시대의 성급한 미래관 때문일까?

불확실성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기대감을 무뎌지게 한다. 속아 넘어갔던 지난날의 실망감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 좋은 뉴스거리를 반대편과 신중하게 검토하고, 그 검토의 결과에 대해 왜 두 손 잡고 함께 발표하지 않았나? 민족적·국가적 쾌거가 될 뉴스를 왜 홀로 독점하고, 사유화하려 했나? 국민이 가장 바라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함께 협의하고, 함께 결과를 도출해내는 모습이다. 

끝으로, 나랏돈의 곳간지기는 자린고비에게 맡겨서도 안 되지만, 포퓰리스트 정치인에게 맡겨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필자의 작은 불신과 불안도 한 귀퉁이에 끼워 넣고 싶다. 원유로 추정하면 찍 해봐야 4년짜리 산유국이 된다는 거, 천연가스로 추정하면 29년짜리 가스생산국이 된다는 거, 참 불안한 일이다. 선거 때면, 줄줄이 풀자는 요구도 많아지고, 아낌없이 주자는 요구도 많아지고, 뭐 하나 머리를 맞대고 하는 일이 없는데, 안 풀고, 안 주면, 네 편과 내 편으로 갈라놓은 투표장의 분위기가 서늘해질 테고, 도시의 음지는 물론 농어촌에 이르기까지 마약이 횡행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고려할 때, 기성세대가 덜 쓰고 더 저축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주자는 호소는 꼰대의 시대착오적 언어란 핀잔을 듣기에 족하다. 

이영철 시인/대학교수

<저작권자 경제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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