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수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햄릿은 영국의 문필가아지 사상가인 토마스 카알라일(1795-1881)이 “인도는 버려도 셰익스피어는 버릴 수 없다”라고 극찬했던 위대한 극작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4대 비극들 중의 하나이다. 그 이야기의 기원을 찾아보면 그 원제목이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비극>(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 이듯이, 12세기 덴마크 왕가의 비극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텐버그 대학에 유학중이던 왕자 햄릿은 부왕의 서거 소식을 듣고 귀국하지만 이미 숙부 클로디우스가 왕위에 올라있고 어머니 거투르드는 그와 재혼한 상태라서 절망에 빠진다. 그러던 중 부왕의 혼령이 나타나 숙부가 잠자고 있던 자신을 독살했으니 아들로서 복수해줄 것을 부탁한다. 햄릿은 극중 연극을 통해 숙부의 범죄증거를 확보하고 복수를 기도하다가 실패하여 오히려 숙부의 의심을 사게 되고, 어머니의 내실에 숨어 있던 간신 폴로니우스를 우연히 죽이게 된다. 클로디우스는 폴로니우스의 아들 래어티스를 이용하여 햄릿과 검술 시함을 하게 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그의 칼에 독을 발라 놓는다. 시합 중 햄릿은 그 칼에 상처를 입고, 칼이 바뀌어 래어티스도 자신의 칼에 찔려 죽어가다가 친구 햄릿에게 클로디우스의 음모를 들려준다. 햄릿은 그 독이 묻은 칼로 숙부를 죽여 복수에 성공하지만 자신도 중독되어 죽는 비극을 맞는다.

그러나 12세기 덴마크라는 이 기본적인 배경의 틀 속에는 16세기 영국 런던의 내용물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어 감수성이 예민한 독자/관객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왕자 햄릿이 12세기에는 있지도 않았던 비텐버그 대학을 다닌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햄릿은 선왕 이 서거하자 숙부가 자신의 국왕 선출권을 빼앗아 갔다고 하여 마치 12세기에 장자상속이 아닌 선거에 의해 왕위계승이 이루어진 듯이 묘사되어 있다.

또한 극중 연극을 통해 클로디어스의 선왕 살해 증거를 잡은 햄릿이 복수를 시도할 때 12세기 덴마크 인이라면 주저 없이 삼촌을 죽여 부왕의 복수를 했겠지만, 그는 기도하는 클로디어스를 죽이면 그를 지옥이 아닌 천국에 보내서 오히려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복수를 미루는 장면에서는 그가 완연한 기독교적 윤리관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인간의 무한한 능력에 대해 예찬하는 대사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낙관적인 휴머니즘을 보여준다.

그 후 이런 형의 왕권을 시기하여 찬탈하는 동생, 형사수취(兄死嫂取)의 풍습, 그리고 복수하는 조카의 이야기는 1994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온 킹>(Lion King)으로 이어진다. 그 이야기의 고향인 아프리카 대륙의 동물의 왕국의 사자 무파사(Mufasa)는 존경 받는 왕이었지만 못생기고 음모를 좋아하는 동생 스카(Scar)의 음모에 의해 동물들의 발굽에 짓밟혀 죽는다. 스카는 얼굴에 상처가 나 있는 흉측한 모습이고 검은 갈기털로 인해 그는 악의 인물을 형상화한다. 그는 형수 사라비(Sarabi)를 왕비로 삼아 잠시 왕국을 다스리지만, 그 왕국은 점점 쇠퇴한다. 한편 오지로 도망하여 동료들을 규합하고 힘을 기른 무파사의 아들 심바(Simba)는 결국 삼촌 스카를 몰아내고 왕좌를 되찾아 동물의 왕국은 다시 번영을 이어간다.

또한 이 질투와 복수의 비극은 12년이 지난 2006년에 고대 중국을 무대로 하여 동양에서 새로 태어난다. 영화 <야연>(夜宴, The Night Banquet)의 배경은 서기 907년 당 제국이 쇠락의 길로 접어 접어들자 반란군들이 사방에서 나라를 세우는 5대 10국의 혼란기인데, 어느 날 황제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황제의 동생 리가 황위를 계승한다. 이 때 황태자 우 루안은 사랑하는 완(장쯔이 분)이 부황의 비가 되지 궁궐을 떠나 방랑생활을 하며 시와 노래를 벗하여 살아가다가 이 소식을 듣는다.

한편 새 황제 리는 우환을 없애기 위해 황태자 우 루안에게 계속하여 자객을 보내지만 황태자는 끝내 살아남아 황궁으로 돌아온다. 리는 사랑하는 여인을 쟁취하기 위해 형을 독살하고 권력을 차지하지만 결국에는 그녀가 주는 독주(毒酒)를 기꺼이 마시며 죽어간다. <햄릿>과 <야연>의 공통점은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친족살해와, 그 살해동기 속에는 미모의 형수가 있으며, 왕태자가 삼촌에게 복수를 계획하며, 황태자는 어머니에 대한 외디푸스(Oedipus)적 사랑을 하고 있다는 점이며, 차이점은 리의 성격이 클로디어스와는 달리 악한과 로맨티스트 사이를 오가면서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필자는 이집트의 오시리스(Osiris) 신화를 읽다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오시리스는 고대 이집트의 신화에 나오는 풍요, 농업, 부활, 생명의 신이며, 자애롭고 현명한 군주로서 백성들에게 농업기술을 가르쳐 주고 풍요를 가져와서 만백성의 사랑을 받는다. 그는 또한 아름다운 누이 이시스(Isis)와 결혼하는데, 그의 못생기고 사악한 동생 세트(Set)는 극심한 질투를 한다.

그는 튼튼한 상자를 만들어 궁중인물들에게 하나씩 들어가 보게 하여 가장 잘 맞는 사람에게 그 상자를 주겠다고 한다. 오시리스가 그 상자에 들어갔을 때, 세트는 그 상자를 잠그고 난도질을 하여 그 시체를 나일강 곳곳에 뿌려버린다. 그 후 왕비 이시스는 강가 벽지에 숨어 살며 아들을 낳아 몰래 기른다. 그녀는 오시리스의 시체 조각들은 수소문하여 거의 모두 수거하여 맞춘 다음 주술사의 기도로 그를 부활시킨다. 그러나 왕의 남성기가 있는 부분은 찾지 못해 생식을 하지는 못하고 이미 죽은 생태라 명계의 왕이 되어 죽은 자들을 재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세트는 이집트의 왕이 되고,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 오루스(Horus)는 몰래 군사를 모아 삼촌 세트를 공격하여 죽이고 그의 왕좌를 차지한다. 그는 매의 머리를 한 남성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사자의 외관을 허거나 스핑크스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는 부왕의 복수를 완료한 다음 현세의 통치자기 되어 파라오의 전형이 된다.

이러한 <햄릿>이야기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건대 이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에서 시작되어 유럽대륙과 신대륙으로 전파되고 또 다시 동양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햄릿의 복수 이야기가 많은 시대착오와 이중구조로 인한 혼란에도 불구하고 인류 최고의 비극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인간 본성의 깊은 곳에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사랑과 욕망의 문제를 작품화했기 때문이다. 지독하리만치 강한 권력욕, 친족의 행복에 대한 질투, 근친상간적 사랑, 그리고 복수의 충동 등은 인류가 교육과 종교를 통해 아무리 교화를 시도해도 변화되지 않는 본능이 아닌가 한다. <라이온 킹>에서 티몬(Timon)과 품바(Pumba)는 비극에서 빗어나 지나치게 낙관적인 인생관을 보여주고, <야연>의 황제 리는 전형적인 악인이 아니라 일부 낭만적인 면모를 보여주더라도 이런 이야기의 근간은 거의 변함이 없이 인류의 상상력과 예술적 변용과정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오는 것이다.